함께 엮이는 기쁨
나만 엮이기 아까운 사랑방

30명의 동료활동가들이자 후원인들이 건네는 이야기, 궁금하시죠?

앞으로도 기꺼이

서로 기꺼이 엮고 엮이며 만들어온 변화, 앞으로 계속 또 함께 이어나갈게요.

기꺼이 엮이고 싶은

함께 엮어갈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사랑방 후원인이 되어주세요! 

#나만엮이기아까운

권미란  |  전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올해 에이즈인권운동은 20년차를 맞이했다. 20여 년 간 인권운동사랑방과 어떻게 엮였는지 5줄로 쓰라니 더 어렵다. 굵직한 것만 말하면 에이즈인권운동은 3번의 대책위를 꾸릴 일이 있었는데, 매번 사랑방이 함께했다. 에이즈예방법 개정, 에이즈치료제 푸제온 약값 인하, 요양병원의 배척이 투쟁 과제였다. 2006년 에이즈예방법 개정 투쟁은 "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예방의 지름길"이라는 문장으로 압축되었고, 현재도 중요한 기조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확진자나 의심자를 비난하고 처벌하는 방식 대신 인권에 기반한 감염병 대응을 해야한다는 교훈과 감각을 체감하게 되어 조금 기뻤다. HIV감염인에게 치료제와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은 제약자본의 이윤창출전략, 의료의 상업화와 더불어 HIV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결합된 결과다. 이를 포착할 수 있었던 것도 인권운동사랑방과 엮인 덕분이다.

김선우  |  4.16연대 사무처장

기어이! 그리고 기꺼이 엮인 인권운동사랑방! '사랑방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 그럼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곳인가?'라는 물음을 가지면서… 대구에서 30년을 활동한 저는 멀리서 풍문으로만 듣던 사랑방 활동가들을 세월호 참사로 만나게 되었고, 이후 소식지와 활동 소식을 통해 사랑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방이 나와 우리의 일을 먼저 나서 해 준다는 생각에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사랑방은 세상을 밝히는 빛처럼 저에게 다가왔고 엮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기꺼이 엮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엮이셔요!

김정하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2002년, 기도원으로 끌려가 갇혀 살았다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제보전화가 왔을 때, 나는 막막함과 무력함 때문에 깊은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수용된 사람들, 누구를 위한 격리인가를 증명해 내야 하는 일은 엉키고 설킨 풀릴 수 없는 실타래 같았다. 그때 나는 '갇힌 자들의 벗'이라는 이름으로 감옥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사랑방 활동가들을 만났다. 갇힌 자들의 벗이라니, 이름이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감옥과 시설의 역사적 맥락이 닿아 있음을, 시대마다 있었던 격리정책의 피해자들이 빈자와 장애인이었음을 확인하고 서로 기꺼이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그 만남 이후 '칠준위'(인권침해가 있다고 제보받은 시설의 문제를 폭로하기 위해 치러간다는 뜻으로 붙인 '칠 준비위원회'의 준말)를 결성하고 서로에게 걸려온 제보사건들을 함께 치러 다녔다. 이미 양지마을 사건으로 지독하게 수용시설의 문제와 피해자들을 경험한 사랑방 활동가들의 내공은 역시 달랐다. 사랑방 동지들과 함께 하면서 나는 인권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됐고, 내 안의 무력감과 자괴감을 뻥 차버릴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엮이고 얽혀서 사회보호법 폐지 운동을, 각종 수용시설 사건들을 대응했다. 사랑방이 초석을 둔 감옥인권운동과 시설인권운동, 그에 엮인 사람들이 오늘도 탈시설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2000년대 초 어떤 글을 읽었는데요, 월급과 전문가주의를 넘어서는 '운동가'를 말했어요. 운동가! 그게 뭘까요? 지금도 질문을 던지는 사랑방을 그 때 만났죠.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를 입고 집회 제일 앞 줄에서 권리를 말하던 이들, 밤샘 파업연대를 하다 <인권하루소식>을 전국 팩스로 보내던 이들과 성폭력 적정·적법 처벌과 포퓰리즘 엄벌주의 사이에서 인권과 젠더를 논하게 되었죠. 사랑방과 함께 세월호를 인권기준으로 바라보고, 차별금지법을 사랑과 연대의 광장으로 만들고, 기후위기를 불평등에 맞서는 정치로 다시 마주하게 되었고요. 항상 질문하고, 들어주고, 엮어내는 사랑방, 고마워요!

나영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사랑방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때. 아마도 학생의 날을 맞이하며 학생회에서 세미나할 책을 찾다가 혜화에 있던 사랑방 사무실을 처음 찾아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뒤로 학생운동을 거쳐 단체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인권운동,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 주거권 운동,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그리고 여러 투쟁 현장에서 사랑방의 활동과 만났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2013년 대한문 앞에서 진행했던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을'들의 이어말하기 활동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를 엮이게 만든 사랑방의 활동이 지닌 매력은, 단단하게 원칙과 방향을 찾아 가면서도 사람들 사이의 각기 다른 경험과 결을 세심하게 읽어내고 연결해 나간다는 점이었어요. 어느 문장 속에 정의되어 있는 인권이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새로운 정치가 되게 만들고, 인권의 현장들을 일구어 온 것이 사랑방의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활동의 태도와 방법을 사랑방을 통해 많이 배웠어요. 사랑방의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앞으로도 그런 동료로 오래 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난다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상임활동가

사랑방을 처음 만난 건 충정로 사무실에서였습니다. 저는 2008년에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는데 제가 활동하던 단체는 사무실이 없어서 모임을 할 때마다 다른 단체의 공간을 빌려야 했거든요. 사랑방에 회의하러 갔다가 피켓도 만들고, 어느 날은 눌러앉아 영화도 보고 밥도 해먹고… 이름 그대로 '사랑방' 같은 곳이었어요. 자연스레 스며들고 엮일 수밖에 없었어요.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짚다 보면 인권운동사랑방이 꼭 등장하더라고요. 사랑방 활동가들이 여러 운동을 엮어내며 그 곁에서 의지가 되고 동료가 되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발걸음들이 쌓여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도 사랑방 덕분에 알게 되었죠. 앞으로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지어가는 이 길에서 같이 잘 늙어가고 싶어요!

남어진  |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활동가

2013년 10월 1일. 제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을 처음 만난 날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참 인상깊은 날입니다. 밀양765kV송전탑 공사가 강행되어 3,000명의 경찰이 밀양으로 쳐들어왔던 날. 살면서 처음 인권이 무너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마주한 날이었어요. 그 날은 제가 처음 밀양으로 온 날이기도 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타고 가라는 차를 타고 바드리 마을이라는 곳으로 갔는데요. 마침 그 차에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형광색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를 입고 함께 타게 되었어요. 워낙 다들 무거운 얼굴들이라 말을 붙일 수 없었던 기억이 있어요. (이 기억은 잘못 되었을 수도.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살갑게 말을 걸어줬을 것 같은데. 제가 쫄아서 대답을 안 했을수도.) 속으로 '국가인권위에서 나왔나…? 멋지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들은 주민들의 인권이 무너질 때마다 온 힘으로 싸웠어요.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해 6월도. 그렇게 만난 사랑방은 첫인상처럼 항상 인권의 곁에 있었어요. 2013년 밀양 깊은 산 속에서도, 2022년 서울 한 가운데 있는 국회 앞에서도, 내가 몰랐을 무수히 많은 현장에서도 항상 그랬겠죠. 때로는 단호하게 한걸음 나아가며, 때로는 더는 뒤로 밀리지 않게 지면을 무겁게 밟고 버티는 사람들. 인권운동사랑방이 30년이라구요. 나이를 역전할 순 없지만 곁에서 함께 늙겠습니다. 함께 평등의 길로 가요.

다슬  |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2019년 노란리본인권모임으로 자원활동을 해 온 인연이 동료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사랑방은 구글링을 통해서 알게 된 단체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인권단체에서 '큰 집' 같은, 역사가 깊고 역할이 큰 곳이더라구요. 인권단체에서는 사랑방 모르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울텐데요, 사랑방은 다른 단체와도 많이 엮여서 활동해온 곳이라 그런가 봅니다. 사랑방이 인권단체에서 뿐만아니라 여러 곳에서도 당연히 아는 공간이 되면 좋겠네요. '너 아직도 사랑방도 모르니?' 이런 말이 당연해지는 유쾌한 상황을 상상해 봅니다.

밎  |  병원 노동자

회사에서 여성 동료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았어요. 때로는 장애가 있어서, 때로는 임신해서, 때로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 순간을 지켜볼 때마다 마음이 힘들었어요. 그 때 동료 몇 명이 회사를 바꿔보자며 용기를 내었어요. 저도 마음을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런 건 문제라고, 이런 건 부당하다고 말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 때가 페미라는 단어가 한창 욕으로 쓰이던 시기였거든요? 제가 페미니스트로 보여지기 시작하자, 수많은 시간과 공간에서 저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들렸죠. 그때 인권운동사랑방에 가면 여러 활동가가 단단한 언어와 다정한 마음을 표현해 주었어요. 자연스럽게 사랑방에 엮였죠. 다른 분들도 사랑방에 많이 엮였으면 좋겠어요. 인권운동사랑방은 정말 멋진 단체거든요.

박장준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

2004년 봄, 한 통의 전화. "청소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사랑방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게 우리 운동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만나서 같이 이야기해봐요." 두근두근. 인생 첫 동지인 청소노동자들과 인생 첫 노동조합을 만들며 만난… 사랑방은 제가 경험한 첫 '연대'입니다. 연대=한덩어리로 서로 굳게 뭉침. 그렇게 엮이고 엮여 저는 지금 사랑방을 처음 만난 그곳에서 노동조합 활동가로 살아갑니다. 사랑방, 정말 고마워요!

박한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활동가

인권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모르는 이슈를 찾아보면 항상 잡히던 <인권오름>, 이걸 만드는 사랑방은 어떤 곳인가 궁금했던 것이 첫 기억이네요. 그 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권력감시대응팀,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등 여러 현장에서 너무나도 믿음직하고 배울 것이 많은 사랑방 활동가들을 만나며 어느새 후원인까지 되었네요. 항상 운동의 든든한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사랑방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 30주년을 정말 축하합니다!

서정민갑  |  대중음악의견가

내가 아무 생각 없었을 때, 이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인권운동사랑방은 번번히 먼저 싸우고 있었다.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근본적이고 급진적으로 외치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오래 싸우곤 했다. 정부가 여러번 바뀌는 동안 많은 이들이 타협했고 권력의 일원이 되었으나, 사랑방은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았다. 사랑방이 계속 같은 자리에 남아 있었으므로, 헤메던 나도 그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래 전 활동가였던 시절 일하다 밤을 새울 무렵, 낡은 팩스가 끼익끼익 거리며 <인권하루소식>을 전해주던 순간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도 변했고, 세상도 변했으며, 인권운동사랑방을 지키는 이들도 바뀌었다. 하지만 어떤 마음은 그대로이다. 그대로인 열정과 투지와 지혜가 갈수록 고맙다.

손희정  |  프로젝트38 멤버

참 이상한 곳이죠, 인권운동사랑방 말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 자리에 사랑방이 있었습니다. 2022년만 해도 그랬죠. 기후정의버스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단식 농성장에, 대우조선 희망버스에,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자리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고 성평등 정책 강화를 촉구하는 자리에. 사랑방은 그렇게 운동의 현장을 연결하는 일을 해왔고, 덕분에 우리도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랑방이 30주년을 맞이했다니, 이제 우리가 사랑방을 위해 사람들을 엮을 시간인 것 같군요. 축하합니다!

신윤동욱  |  한겨레 기자

우리 집에는 사랑방 20주년 기념품인 '회동' 수건이 아직 있습니다. 가끔 쓰게 되는데, 그때마다 사랑방을 잠시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10년 저희집 구석에 항상 있었던 그 수건처럼 사랑방의 인권운동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항상 함께 해왔다고 느낍니다. 나이 스물하나에 처음 사랑방을 알았고, 기꺼이 엮이고 싶었고, 지난 30년을 고맙게 함께 해왔습니다. 사랑방 없는 세월이 제 인생에 없으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다가 가끔은 생각합니다.

우공  |  인권재단사람 활동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에 처음 엮인 것은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인권영화제의 반딧불 상영회였습니다. 2000년대 중반 서울역사 앞 광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주거권을 다룬 인권영화를 상영했고, 이 준비 과정에 아주 살짝 엮었지요. 이후 거리와 광장에서 사랑방 활동가들과 더 많이 만나며 생각했어요. 과거 어느 거리, 광장에서 나도 모르게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과 엮여 있었겠구나. 나처럼 많은 이들을 인권활동과 엮고 있겠구나 하고요.

유해정  |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

1998년 5월,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의 시작은 엠티였고 그 날 이후 내 별명은 소주 6병이 되었다. 그리고 상임활동가로 9년을 사랑방에서 보냈다. 비틀거리는 삶에 길을 내어준 곳이 사랑방이었고, 사랑방을 통해 수많은 인권현장에 서서 사람들과 관계맺고 울고 웃고 배우고 벼리며 성장했다. 그래서 사랑방은 거북이 등껍질 같은 내 인생의 방어막이자, 때로는 슬그머니 버리고 싶은 오늘과 내일을 담금질 하게 하는 삶의 무게.

이김춘택  |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노동조합 활동이 공장 울타리 안에 갇히고, 노동문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인권운동사랑방은 노동운동이 공장을 넘어 다른 운동 만나고 서로 엮이는 가교(架橋)였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 30주년을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사랑방이 노동운동과 여러 운동이 만나고 엮이는, 늘 북적북적한 '사랑방'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상희  |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사랑방과의 인연은 <인권하루소식>으로 시작된다. 25년 전 변호사 시보를 하던 사무실 잡지꽂이에서 <인권하루소식>을 처음 만났다. 인터넷 매체가 없던 시절 매일 아침 팩스로 인권소식이 전달된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소식지에 실린 양심수들의 옥중 투쟁기는 충격이었다. 열악한 교도소 환경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을 하던 분들의 소식을 보면서 재소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 사랑방 문을 두드렸고, 활동가들과 세미나를 하며 재소자 인권과 사회보호법 폐지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사랑방의 활동이 내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처럼, 앞으로도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다가가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알찬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원호  |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개발의 현수막이 동네마다 나부끼고 강제퇴거가 극심하던 2000년대 중반 뉴타운 개발의 시대, 인권운동사랑방이 내민 주거권의 손을 덥석 잡고 엮이게 되었습니다. 철거민 운동을 조직하는 활동을 하던 2007년 무렵부터 주거권운동네트워크를 통해 사랑방을 만났고, 사랑방은 개발에 맞선 운동의 의미를 확장하고 사회적 권리로서 다양한 주거권 의제를 접하는 매개였습니다. 특히 2008년 세계인권선언 60돌을 맞아 주거권선언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연대와 활동은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이종걸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사랑방과 엮이는 일은 ‘일’로서만이 아니라 운동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료, 의제, 현장의 순간들을 만나는 기쁜 일이었어요. 2006년 사랑방 사무실이 대학로에 있던 시절 저는 HIV/AIDS 인권운동을 만났고, 중림동에 있던 시절에는 주거권 운동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탠 순간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반차별 운동까지. 엮이는 것은 결국 나도 함께 운동에 책임을 지고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의 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힘을 내는 데 함께 해준 사랑방의 30주년. 내년 30주년을 맞이하는 친구사이도 사랑방을 엮을 제안을 건네겠습니다!

이태성  |  발전 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간사

인권운동사랑방과 나의 인연은 2019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발전소 현장에서 죽어간 24살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며 함께 눈물 흘렸던 인터뷰, 2020년 기후위기 속에서 소모품처럼 사라지는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던 토론회와 투쟁까지.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함께 하며 사람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사랑방 동지들, 우리 발전 노동자들은 환한 웃음으로 사랑방 3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동지들이 잡아주신 연대의 손 절대 놓지 않고 기후정의 실현, 일 하다가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노동현장 만드는 그 날까지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이하림  |  출판편집자

세월호 유가족 기록집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편집을 맡으면서 인권운동사랑방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를 몇 년에 걸쳐 꾸준히 담아낸 미류, 호연님이 인권운동사랑방의 전·현 활동가였고, 회의에 필요한 공간을 사랑방에서 선뜻 내주셨어요. 그렇게 드나들게 된 사랑방에서 '재난과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자원활동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고요. 세상이 망해간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될 때마다, 망해가는 세상에 내가 개입할 여지가 너무나도 적다는 패배감에 빠질 때마다 저녁 늦도록 환하게 밝혀진 사랑방 사무실을 떠올립니다. 너무나도 온화해 보이는 사랑방의 활동가들이 누구보다 맹렬하게 활동하는 상황들을 떠올리면 저의 절망감과 패배감이 부끄러워집니다. 저에게 '분노할 힘'을 주는 사랑방의 오늘과 내일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장서연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저는 인권운동사랑방을 2007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경험한 16년 동안 사랑방 활동가들은 필요한 현장에 늘 함께 있었습니다. 2011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최초 점거농성이었던 '차별없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울시의회 점거농성'은 진보 교육운동과 긴장과 갈등이 있는 사안이었지만, 사랑방은 언제나처럼 인권운동의 원칙과 중심을 잘 잡아주는 든든한 동지이자 신뢰할 수 있는 단체였습니다. 고민이 생기거나 어려운 사안이 터졌을 때 의논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단체, 그래서 앞으로도 기꺼이 엮이고 싶은 단체, 사랑방의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정소연  |  변호사/소설가

인권운동사랑방의 30주년 축하 메시지를 달라는 연락을 받고 뿌듯했답니다. '이야, 사랑방에 축사를 보낼 수 있다니, 나 성공했네~!' <인권하루소식>을 보았던 학부 과방, 혼자 어색하게 참석했던 인권영화제, 처음 나간 낯선 거리 시위에서 만났던 사랑방 깃발, 국제인권규약을 검색할 때마다 나오던 사랑방 누리집 링크, 이제는 다 기억도 나지 않는 여러 심포지움과 집담회들…. 연대가 필요한 자리마다 있었던 동료, 인권운동사랑방의 30주년을 축하할 수 있어 참 기쁘고, 이 기쁨을 새로 오는 후원인분들과도 나누고 싶어요. 함께 축하하고 함께 40주년, 50주년, 그 너머를 향해 나아갑시다.

정정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유가족, 강정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된 2012년 생명평화대행진을 함께 하면서 인권활동가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인권활동가들의 성실하고 치열한 활동에 깊은 울림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연구자로서 한국 인권운동을 연구하게 되면서 인권운동사랑방이 '진보적 인권운동'이라는 한국 인권운동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내온 역사를 알게 되었죠. 이후 진보적 인권운동을 갱신해가는 모습에 이끌려 함께 하다보니 이렇게 사랑방의 역사와 현재에 엮이게 되었네요. 인권운동사랑방을 응원하며 그 활동에 연대하겠습니다.

최승연  |  변호사

제가 인권운동사랑방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입시를 마친 직후였습니다. '인권운동에 관심 있어요'라는 말 한 마디에 사랑방 활동가들은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4~5년 간 자원활동을 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자연스럽게 활동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랑방과 함께하지 못했던 시기에도 제 마음속에는 늘 '사랑방'이 있었습니다. 사랑방은 그런 곳입니다. 권리를 위해 싸우는 자들과 늘 함께하면서,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수많은 이들의 기꺼운 마음을 서로 엮어가는 곳. 그런 사랑방이 벌써 30주년을 맞이한 지금, 저는 자랑스러운 사랑방의 후원인입니다!

최홍조  |  건양대 예방의학교실 조교수

저는 2007년 <인권오름>에 쿠바를 다녀온 이야기를 소개하며 사랑방에 엮이게 되었습니다. 사랑방이 연재하던 '가라가라 빈곤' 꼭지의 하나였습니다. 다음 해 사랑방 후원을 시작했고, 2009년에는 짧게 주거권팀 자원활동도 했습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고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에서 다시 사랑방을 만났습니다. 2007년 그때부터, 2023년 지금까지 쭉. 빈곤, 주거, 건강 등 여전히 저에게 소중한 주제 곳곳에 사랑방의 흔적이 있습니다. 어떤가요? 삶의 흔적 곳곳을 사랑방과 엮이는 기쁨. 함께 나누지 않으시겠어요?

한낱  |  전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한 지붕 아래 한솥밥 먹는 존재를 식구라고 부른다면, 저는 사랑방의 오랜 식구였습니다. 제가 상근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인권교육센터 '들'과 사랑방은 사무공간을 함께 씁니다. 투쟁 현장에서는 '사랑방'이, 공동 부엌에서는 '사랑방 활동가'가 보입니다. 한 김 식은 활동가들과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고, 느슨하게 일상을 늘어놓던 시간이 그립습니다. 사랑해서 엮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대개 엮였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그래서겠죠? 비바람 몰아치는 대한문 앞에서 우비를 입고 사랑방 20주년 속기 자원활동을 했던 악몽이 생생히 떠오르지만! 30주년에도 기꺼이 엮이고 싶었습니다. 40주년에도 뿌듯하게 엮일 수 있도록 인권운동 일궈요!

한재각  |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

춥고 덥고 태풍 부는 자연의 일 앞에, 인권운동이 뭔 오지랖이냐 싶을 수 있다. 기후위기 앞에서도 존엄한 삶을 함께 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인권운동사랑방이 기후정의운동에 뛰어들고 있다. 인권이 위협받는 곳이면, 그게 어디든 무슨 상관일까. 낯선 길이지만 인권과 기후를 엮어 가야 할 길을 넓히고 있다. 어느 날 찾아와 '다른 길을 내자'는 말 한마디로 나와 많은 이들을 엮어 기후정의동맹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기후정의운동을 위해 사랑방은 기꺼이 활동가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퍼주고도 남는 게 있을까 싶지만, 이들은 그리 살아왔다. 이제 우리가 채워줄 차례다.

홍은전  |  기록활동가

2017년 세월호 유가족 청년들과 여행 프로젝트 '다시 봄 마주하기'를 진행했을 때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인 미류, 어쓰와 함께 했습니다. 두 사람이 매사 어찌나 열심이던지 몹시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미류가 해맑은 얼굴로 "인권운동은 하면 할수록 재밌다"고 말했을 때의 충격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미류를 엮어 제 책 『그냥, 사람』에 추천사를 쓰게 했습니다. 미류는 저를 엮어 사랑방 후원인이 되게 했습니다. 기꺼이 엮는, 인권운동사랑방 30주년을 축하합니다!

기꺼이 엮일 후원인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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