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은전 님을 만났어요
차별받는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될 때의 에너지를 기록하고 싶은 홍은전 님을 만났어요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기록활동을 하고 있어요. 세월호,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장애인,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노들야학 교사였어요. 현재는 프리랜서 비정규 활동가이면서 장애운동가이기도해요. 가장 강력한 정체성은 동물권에 꽂힌 사람인데요, 인권활동가 정체성이 굉장히 분열적인 상황이기도 하죠
최근 하고 있는 기록활동도 소개해주세요
올해는 장애운동하는 비장애인 활동가를 기록했고, 작년에는 당사자 활동가를 기록했어요. 재작년에는 열사들을 기록했고요. 열사 기록은 너무 힘들었어요. 돌아가신 분들이기에 그 주변을 인터뷰해서 복원하는 거였어요. 인터뷰를 아무리 해도 죽은 사람은 말이 없잖아요. 글을 써도 검토를 받을 사람이 없어요. 같은 현장에 있었고 같은 시대를 통과해 온 주변 사람, 가족, 그를 가장 사랑한 사람, 그를 가장 애달파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 죽은 사람이 복원될 줄 알았거든요.
글이 완성돼 갈수록 당사자는 이 기록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가 생겼어요. ‘이게 정말 그 사람이 맞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기록은 당사자가 살아서 말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열사 기록에 이어 2021년과 2022년엔 연속기획으로 장애해방운동 활동가들의 생애 기록을 했어요. 내년에는 책이 나올 것 같아요.
첫 작업이 노들야학의 20년을 기록하는 작업(『노란들판의 꿈』)이었는데, 기록하는 은전 님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지나고 나면 다 낭만화되는 거라서 굉장히 좋았습니다만 집필 기간 내내 부족한 지난 시절의 나를 직면하는 행위기도 했어요. 처음엔 노들야학의 역사를 기록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사명감이었어요. 하다 보니까 내가 포함된 우리를 쓰는 거였어요. 나라는 렌즈를 통과한 역사이고 나라는 사람이 너무 확연하게 드러나는 거였어요.
결과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계속 바라보는 성찰의 경험이었어요. 엄청난 기회이자 의무가 주어진 거죠. 뭔가를 성찰하는 시간이 보통 사람에게 흔히 주어지지는 않으니까요. 지난 시간의 나를 직면하는 것. 놀랍지만 너무 괴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남에게 별로 권하지 않아요. 자기가 할 수 있다면 괜찮은 일이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해도 자신이 없을 만큼 너무 괴로웠어요. 그때 몸도 너무 많이 상했거든요.
그러면서도 기록활동을 이어갈 때 은전 님이 쓰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걸까요?
제 인생의 화두인데요. 『노란들판의 꿈』이 나오고 나서 많은 사람이 노들 같은 공동체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덕담처럼 했어요.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인 걸 알지만 의아했어요. 우리 같은 공동체가 없는 좋은 세상이란 건 무슨 뜻이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한테는 노들야학 같은 공동체가 차별받는 사람 혹은 고통스러운 현장으로만 보이는 걸까요. 그렇다고 “우리도 희망이 넘친다”고 답하기는 싫었어요. 1~2년 동안 그런 피드백을 받아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몇 년 후에 개정판을 내면서 그 책에 이렇게 썼어요. “나는 차별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거”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차별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그때는 스스로 말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부정하는 거죠. 우리는 그렇게 어두운 사람이 아니고 불쌍한 사람이 아니고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런 면을 계속 누르고 싸우는 사람으로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기록작업을 계속하면서 많은 사람이 “나 너무 괴로워요.” 이런 말을 해요. 어떤 사람은 괴로운 게 분명한데도 그렇지 않은 척을 해요. 그러면 나는 그의 고통을 더 듣기 위해 애를 써요. 그래야 그가 왜 이 어려운 싸움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런 기록활동의 경험이 쌓이면서 고통받는 사람과 싸우는 사람이, 차별과 저항이, 절망과 희망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쓰고 싶었던 건, 어떤 관계 속에서 차별받은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지였어요. 그런 건 책이나 지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시간과 관계 속에서 배워요. 그러다가 진심으로 믿게 되는 순간이 와요. 내가 당하는 이 억울한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요. 우리 모두에게 고통과 차별받는 순간이 와도 그렇게만 머물지 않고 전환해서 관계가 변화하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에너지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를 찾아다니고 그런 것이 좋아요. 기득권자 비장애인인 저 같은 사람에게는 어떤 죄책감이 책임감으로 변하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에 참여하면서 인권활동가들을 만나고 나서 달라진 게 있나요?
글을 쓰고 기록을 하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운동 과제로 삼는 사람을 처음 만났거든요. 당시에 장애운동은 기록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런 문화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까지 책도 거의 없었어요. <비마이너>(*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언론)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수많은 집회를 했어도 언론 기사가 없었어요. 노들야학 기록을 마칠 즈음에 세월호 기록을 함께하게 됐어요. 그때 인권운동사랑방활동가도 함께 했어요.
세월호작가기록단 시작했을 때 어려웠어요. 글쓰는 사람은 너무 똑똑해 보이잖아요. 말 잘 못하면 안 될 것 같고요. 당시 우리는 스스로를 ‘장애인운동을 한다’고 했지 ‘인권운동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권운동은 뭔가 아주 다른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인권운동 하는 집단에 속하면서 긴장감이 엄청났어요. 다른 문화가 있다고 느꼈어요. 인권운동단체들은 대중이 아니라 활동가로 구성된 조직이니 대중들에게 어떤 식의 말을 하려면 글을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느꼈을 것 같아요. 저희(장애운동)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물리적인 싸움을 계속한 거예요. 장애 당사자들을 조직해서 시청 가서 싸우고 구청 가서 싸우고 복지부 가서 싸우고 농성하고. 그래서 제도를 만들고 확장시키는 과정을 몸으로 했어요.
인권활동가를 만나서 ‘글쓰기’라는 운동을 알게 됐죠.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인권기록활동을 하면서 선배 인권활동가들에게 질문하고 듣고 관점을 벼리는 과정 등을 배우고 훈련했어요. 장애인운동가들의 생애를 기록하는 작업은 인권기록활동가들에게 배운 것들을 가지고 예전에 제가 있었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 거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큰 덕을 본 거죠. 세월호 작가기록단과 인권활동가를 만나서 다양한 현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운동으로서 끌어내는 작업을 지금까지고 하고 있어요.
기록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어떤 걸까요?
저한테는 시작이 어려워요. 낯선 사람, 낯선 현장을 만난다는 것. 제가 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현장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까지가 저한테는 가장 큰 어려움이거든요. 제가 장애운동을 하면서 만나는 활동가를 인터뷰하거나 섭외하는 것은 너무 쉬워요. 다 아는 사람이니까요. 장애 운동이 아닌 다른 현장의 사람들은 다르죠. 누가 자기 인생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야기 해주겠어요. 책으로 기록되는 무시무시한 일인데요. 그래서 남의 현장으로 들어간다는 게 기록단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죠. 개인 활동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죠.
기록단이 쌓아온 어떤 신뢰 관계 혹은 활동가들이 가진 역사가 소중한 자원이예요. 올해는 제가 속한 인권기록센터 '사이'에서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해서 백서 등의 기록 작업을 맡게 됐어요. 제가 몸으로 통과하지 않은 10년의 운동을 따라가기 위해서 아주 많은 감각을 익혀야 해요. 공부도 해야 하고 기본적인 데이터와 기사도 찾아봐야 하고 이전 구술기록 같은 것도 다 찾아봐야 하고. 이게 몸을 만드는 일 같아요. 두려움이 없어져야 사람을 만날 거잖아요. 두려움이 없어지려면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알아야 하니까. 공부를 하면서 그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는 몸, 잘 묻고 잘 들을 수 있는 몸, 그 어려운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몸을 만드는 과정이죠. 내가 어떤 얼굴들을 만날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들을 상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때가 저는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일단 그분(구술자)들을 만나면, 구체적인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엮이면 다르게 보이는 게 있을까요?
올해 인터뷰 한 장애인운동가 네 사람만 봐도 한 사람은 탈시설 운동만 파고, 다른 사람은 탈시설 운동하다가 또 다른 운동을 하면서 여러 운동을 경험했어요. 여러 조직을 경험한 사람이 장애운동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고 어느 지역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요. 또 놀라웠던 것은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과 200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이 정말 달라요. 몰랐던 건 아닌데 그들의 생애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았더니, 그게 확연히 눈에 보이는 거예요. 우리는 같은 단체에 둘러앉아 회의를 하지만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른 운동을 통과해 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경험과 판단력 같은 것이 너무나 다를 수밖에 없고, 운동이나 조직에 대한 감각도 달라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20대에 『좋은 생각』 같은 밝고 따뜻한 잡지를 읽었어요.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전태일, 마르크스, 열사들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다른 시대를 통과한 거예요, 시대. 다른 시대는 다른 세계예요. 20대는 세계관이 열리는 시기잖아요. 자기의 언어를 개발하고 운동의 언어를 흡수하는 시기잖아요. 다른 세계를 통과한 그들이 한 조직에서 만나고 나이 차도 엄청나니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죠. 20대 활동가들이 겪는 대혼란이 있는 거죠. 각자 통과한 20대의 시대가 달라요. 비장애 활동가들 인터뷰한 것을 모아보니까 그런 게 참 재밌었어요. 우리가 같은 현장에 있지만 얼마나 다른 역사를 가진 존재들인가. 우리가 함께 운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어려운 일인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기록활동 자체도 서로 엮이는 과정일텐데요
단체 상근활동을 그만두면서 대체로 회의 같은 걸 안 하는 삶을 살게 됐어요. 그러다 공동기록작업으로 협업을 하게 되면 얼마나 긴장되는지, 회의를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겨요. 혼자 하면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혼자 작업해보니까 사람이 좀 못쓰게 되는 기분이에요. 함께하는 근육이 너무 빠르게 퇴화하겠더라고요.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나누며 관점을 벼리거나 세상의 기미를 알아차리기 위해 애쓰는 것도 혼자라면 절대 안할 거예요. 같이 하다 보면 비효율적인 일들도 많이 생겨요. 감정이 충돌하기 때문에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 감정노동도 해야 되거든요. 그게 다 함께 살기의 기술인데 말이에요. 그런 것을 안 하고 함께 살 수 없는 거잖아요. 함께 산다는 것은 그런 노동을 한다는 것이고 또 함께 해야 더 의미 있는 변화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기록 활동을 하면서 세상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고 글쓰려고, 들으려고 노력하는 활동가를 만났어요. 저한테는 감각을 익히면서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기록활동이 갖는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활동가에게는 일종의 투시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같은 걸 보고 있지만 모두가 다른 걸 보고 있는 건데요. 예를 들면, 장애인이 버스를 못 타는 상황을 보고, 누군가는 ‘저 사람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참 불쌍해, 저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 쯧쯧’ 혀를 차고, 누군가는 ‘내가 저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야지’ 하면서 돈을 건네요. 그런데 누군가는 ‘저 버스는 문제가 너무 심각하군, 아주 차별적이야, 우리가 나서서 바꿔야 돼’ 라고 생각해요. 후자처럼 상황을 보는 사람들은 출근길에 지하철을 연착시키는 투쟁을 해요. 어마어마한 욕을 먹는 것을 감내하면서요. 그 사람들이 책보고 참선하다가 그런 시선이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투시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만남과 관계들의 이야기들이 있어요. 나 역시 비장애 중심적 세상 속에서 그런 차별을 너무 당연하게 체화시켰던 사람인데 어떤 과정을 통과하면서 다르게 보는 사람이 되었어요. 내가 어쩌다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과정이 기록활동 같아요. 어느 날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는데, 어떤 존재를 만나서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였다는 걸,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다르게 보이게 된 걸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잖아요? 그럴 때 구술기록이 굉장히 유용한 것 같아요. 세상이 바뀌어야 된다고 말하는 건 너무 쉽지만 세상은 잘 안 바뀌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해나가야 해요. 무수히 변주되는 것이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은전 님이 바라본 사랑방이 궁금하네요
이게 다 우리의 문제라는 걸 아는 사람들, 연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아요. 우리가 다 연결돼있다는 걸, 알아야 연결돼있다는 것도 알죠. 그럼 감각으로 계속 새로운 문제를 공부할 것 같아요. 저한테 구술기록의 세계를 열어준 중심에 사랑방의 전현직 활동가들이 있거든요. 세월호참사라는 갑작스러운 사건에, 누군가 뛰어들어야 할 자리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인권의 관점으로 참여한 거죠. 갑자기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참여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응을 하려면 세상에 대한 정보도 많아야 하고 판단의 근거도 있어야 되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도 있어야 해요. 그런 일을 먼저 한다는 건 멋있어요. 좌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 것 같아요. 좌표를 그릴 수 있어야 자신감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사랑방은 다양한 주제를 계속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빈 자리나 개척해야 될 곳이 있으면 먼저 나서는 걸 운동으로 삼은 조직 같아요. 곤충으로 치면 더듬이가 있어서 세상의 기미를 잘 감지하는 몸이 만들어진 사람들이 하는 일인거죠.
이전 소식
2023년 3월 30주년을 맞이해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 그리고 많은 이들과 더 단단하게 엮인 시간! 함께 따라가 볼까요?
인권운동사랑방 30년 후원의 밤 <기꺼이 엮인 우리> 이후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당일을 떠올려보려 하니 시간이 벌써 성큼성큼 지나가는 듯 한 이 느낌…!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 지난 3월 31일(금) 300여 명의 ‘기꺼이 엮인 우리’가 함께 한 훈훈한 현장, 다시 전해드립니다~